‘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
요즘 IMF 여파로 교육, 경제, 정치 등 각계 각층에서 거품 거둬내는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거품을 거둬내고 구조조정 및 개혁과 갱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회개와 각성의 의미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서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려고 하려는 것이 있는데 기복신앙입니다. 아마 그것이 좋은 것 인지, 나쁜 것인지 정리되어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지성적인 교회나 집회를 가보면 기복신앙에 대해 열심히 비판하며 기독교인의 목표는 빛과 소금이 되어 바르 고 거룩한 행실과 인격적인 신앙을 가지는 것이라 설교를 합니다. 그러나 어딘지 김이 빠져 있고 힘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이 점에 대해 생각해봐야겠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며 가라사대…’(눅 18:1). 어떤 과부가 자기의 억울한 것이 있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동정심도 없는 한 법관에게 가서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매일 강청합니다. 이 비유는 낙심하지 말고 집요하게 기도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8절에 ‘그러나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라고 합니다. 여기서 ‘믿음’은 “그 과부의 기도같이 집요한 기도로 나타나는 신앙을 보겠느냐?” 는 뜻입니다. 이 과부의 기도는 특수하고 영적이라기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기도, 어디서나 볼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기복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물며 논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도 아니하고 동정심도 없는 악한 재판관이라도 번거로운 것을 피하기 위해 그 원한을 들어주었거늘 하물 며 너희 아버지 하나님께서 택한 자의 밤낮 부르짖는 원한을 풀어주지 않겠느냐? 기도를 들어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기도는 신앙의 양면과 같습니다. 신앙대로, 믿는대로 기도를 합니다. 예수님은 주의 기도를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는데, 이것은 교과서적인 표본기도입니다. 예수님의 4 복음서에 나타난 기도에 관한 말씀 가운데에는 우리의 기복신앙에 조명해볼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편은 전부가 기도와 찬송으로 되어 있는데, 굉장히 개인적인 기도, 이 과부의 기도 같은 것으로 꽉 차 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능력에 대해 신학자들은 그때 당시에만 특별히 기적을 행하신 것이었고, 지금은 그 능력을 다 거두어가버렸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기도는 성경에서 하 라고 그랬으니까 하기는 하지만 기도로 병 고침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믿지 않는 자가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너무 철학적이고 신학적이고 교리적으로 이 것도 떼어내고 묘하게 만들어 해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솔직하게 믿기만 하십시오. 병 들면 병 고치는 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에는 ‘고쳐주실 것을 믿습니다. 또 고쳐주시지 아니하실지라도 주께서 주의 영광을 드러내고 거룩한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하는 고백은 주님이 굉장히 기뻐하는 신 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로마서에는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므로 공로 없이 하나님이 죄사함을 주시고,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 자녀가 되게 하 셨습니다. 심은대로 거두고 행한대로 받는다는 인과응보의 법칙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법칙보다도 휠씬 더 높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특별한 은혜법에 의해서 모든 기도를 응답해주십니다. 예수를 믿고 보면 감사해서 ‘손도 당신의 것입니다. 시간도 당신의 것입니다.’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불완전해도 이렇게 기도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성화시키고 열매 맺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공로가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문제가 많이 있으며, 육체의 질병이나 원하는 소원도 있습니다. 또 원수들의 공격, 모함, 음해, 함정,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견딜 수 없는 상처를 받 기도 합니다. 시험을 받을 때가 있고, 무거운 짐을 지고 쓰러질 때가 있으며, 목 마를 때가 있고,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 결혼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 기도하십시 오. 이 과부의 끈질긴 기도를 기억하십시오. 질병을 주님이 꼭 고쳐주시며, 꼭 놓임받게 해주신다고 기대하십시오.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천지가 변해도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다 형태를 바꾸어서라도 축복으로 바꾸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엄청난 거짓이 있습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보면, 기독교도가 죄짐을 벗어버리고 구원을 받아 좁은문으로 들어오고 예수님을 믿는 생애를 시작할 때에 큰 산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도덕산이라는 아주 험한 산입니다. ‘나는 마음이 깨끗해야 된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해야 된다. 이기적이 되어서 는 안된다. 기복신앙을 가져서는 안된다.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된다. 온유해야 된다.’는 율법적인 도덕산을 오르다가 못 오르고 낙심해서 떨어집니다. 그 때 ‘너는 은 혜를 붙잡아라. 거기서 살아 남은 사람은 없다.’는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는 공로 없이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나도 모르게 변화가 생깁니다. 자기의 노력으로 허우적되는 것이 아닌, 은혜로 그렇게 됩니다. 우리는 거룩하지 못해도 주의 거룩함으로, 주의 품성으로 나를 입혀주시고, 주의 성령으로 아들의 형상을 닮게 해주십니다.
우리가 약할 때 소원대로 기도하십시요. 필요한 것을 아뢰십시오. 목 마르다고 말하십시오. 힘이 없다고 말하십시오. 미운 사람을 밉다고 기도해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 공정하게 해주십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은혜 세계 속에서 살고 있으며,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담대하게 조금도 두려워 말고 주님을 쳐 다보십시오. 이 불확실한 시대에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그 품의 탯줄에서 어머니의 젖을 먹으며, 그 어머니의 눈동자를 쳐다보는 어린아이처럼 우리의 살 길은 주님밖 에 없습니다.
이 세상 살면서 일상사의 크고 작은 구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숨 쉬듯이 기도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육체인 것 도, 죄덩어리인 것도, 이기적인 것도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하십니다.
과부의 끈질긴 강청하는 기도 속에서 오늘 다시 힘을 얻으십시오. 주님이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나니…’(대하 16:9). 때를 따라 도와주시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십시다.
- 김준곤 목사 (한국 대학생 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