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혁명 운동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39).
이 말씀은 예수가 가르친 기독교의 뱃지같은 교훈으로, 애신애인(愛神愛人)이 모든 도덕과 종교의 핵심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과 내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입니 다. 내 영혼을 구하려는 노력과 내 이웃을 도우려는 노력도 하나입니다(토인비). 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현대인의 상징적 질병은 정신병이라고 말한 바 있거니와, 현대인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 인간 소외와 대화와 사랑의 붕괴로 실존적 정신병을 앓고 있습니다. 정 신병 환자는 자신이 정신 병자라는 자각이 없고 독백만 있을 뿐, 대화가 단절됩니다. 현대인 의 인간 관계는 밀폐된 병든 자아의 정신 감옥에서 저마다 따로따로 토치카처럼 마주 서 있 습니다. 애신애인의 최대의 장애물은 역시 실천적 가치관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교육을 위해 반드시 선행될 조건은 이 에고(ego)의 상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에고의 상대화에 가장 힘 이 있는 것은 인격적인 하나님 신앙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자아의 왕좌에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자진해서 그의 사랑의 종이 될 것을 결심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자아 의식이 예수 의식으로 바꿔 지고 번데기가 고치 속에서 나비가 되듯, 탱자나무가 접목에 의해서 귤감나무가 되듯, 그는 사랑의 영을 받아 낡은 인격적 자아의 중심에 신비로운 생태학적 변화를 받습니다. 다시 태 어나는 것(重生), 최소한도 사랑에로의 인간 출발점이 여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장부엔 주는 것뿐…
예수가 가르친 사랑은 에로스(性愛)나 혈육의 정이나 우정같은 것보다 높은 십자가의 사랑 이었습니다. 남의 죄와 고통과 죽음을 나의 것으로 대신 담당하는 사랑, 인간의 사랑은 상대 적이고 조건적인데, 십자가의 사랑은 조건 없이 주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사랑은 원수라도 사랑합니다. 미움은 남을 해치기 전에 자신의 몸과 마음과 자손들 속에 해독의 씨와 인과를 심습니다. 증오심을 많이 심는 가문의 가손들은 반드시 골육 상쟁하고, 사회의 가시 노릇을 하며, 싸움꾼이 됩니다. 이스라엘 성군 다윗 왕은 자신을 죽이려고 이 잡듯 추적하는 정적(政敵) 사울 왕을 두 번 죽일 기회가 있었으나 용서했습니다. 사울의 가족은 저주를 받았으나 다윗과 그 자손은 축 복을 받았습니다. 용서하는 일은 복수하는 일보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소인(小人)일수록, 원 시 사회일수록 보복적입니다. 위인의 특성은 관용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정적에게 장관을 시 켰습니다. 링컨이 죽었을 때 가장 많이 운 사람이 그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용서받고 있는 죄인들입니다. 사랑의 장부책에는 받을 것은 없고 갚을 것만 기록합니다. 그에게는 축복해주고 섬겨야 할 사람 외에 싸워야 할 적이 없습니다. 그의 모든 시간은 사형수의 시간에서 영원한 첫사랑 같은 사랑의 시간으로 변합니다. 그의 참회는 항상 못다한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내가 참으로 사는 길입니다. 미국 사망자의 54퍼센트가 고혈압, 동맥 경화증, 비대증 환자라고 들었습니다. 먹기만 하고 소모가 적어서 생기는 병입니다. 사랑의 돈을 쓰고 시간 과 정력을 쓰고 사랑의 고난을 당해 보는 일 같은 정신 위생의 묘약은 없습니다. 그런 고난 을 제 3의 성체라고도 했습니다. 세상에 팔자 좋게 태어나 팔자 좋게 살다가 팔자 좋게 죽는 사람은 창피한 인간입니다. 줄 것도 받을 것도 없이 살다 간 제로(0) 인생도 창피한 인생입니다. 사랑은 인격 성숙도의 척 도입니다. 나이가 들고 박사가 되고 장관이 되어도 남을 섬기는 참사랑을 배우지 못하면 인 생의 유치원생입니다.
미소 한 번, 물 한 그릇도…
참사랑은 구제품을 주는 이상의 인격적 전달이어야 합니다. 진실만이 진실을 만나고 사랑만 이 사랑의 문을 열며, 비록 냉수 한 잔, 짤막한 기도, 미소 하나를 가지고 갔을지라도 사랑 의 전체는 전체에 의해서만 인격적 교환이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은 인간의 영원한 운명에 관심을 갖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고 영생이 사실이라면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살인 같은 죄악이 될 것입니다. 참사랑은 채찍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자녀에게 애신애인의 삶의 원리를 유산으로 남겨 주기 위하여, 유산을 안 남기는 유산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사랑과 신앙의 혁명운동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비전 없는 민족은 망합니다. 우리들의 젊은 이들이 기성 세대를 감격시키고 울려줄 수는 없겠습니까? 부모의 유산을 안받는 운동은 일 으킬 수는 없습니까? 사랑의 자원은 무진장입니다. 사랑은 주면 줄수록 커집니다. 사랑의 증대는 GNP의 증대보 다 소중하고, 사랑의 습득은 어느 교육보다 소중한 인간의 기본 교육입니다. 사랑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고, 사랑을 받을 필요가 없을 만큼 부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들의 에네르기는 사랑을 계발하고 배우는 이외의 것에 100퍼센트 소모하고 있습니다. 나는 학교에서 사랑의 실천 교육을 필수 과목으로 가르쳤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은 실천으로만 배 워지는 것입니다. 봉사와 사랑의 자원은 무진장입니다. 교회나 각급 학교는 민족의 가난과 질병과 고통에 피 부와 피부를 맞대보는 것을 배우고 실천하며 그런 국민 운동을 주관하고 참여시키는 사랑의 학교로 승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가는 공동 운명체가 아닙 니까? 국민의 5퍼센트 정도로 구성된 사랑을 신조로 사는 사랑의 행동 집단이 생긴다면 세 계 1등의 성민 체질로 바뀔 것입니다. 예수의 사랑의 함량으로 인간존재와 생명존재의 질을 평가하며, 예수의 사랑의 방사도(放射 度)로 윤리성의 순도를 재며, 예수의 사랑의 실천 여부로 신앙의 진위를 가리며, 성령충만도 와 성화도(聖化度)의 측정도 사랑의 열매로 알 수가 있습니다. 구약의 압축인 십계명도 하나 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크리스천들도 사 업상의 적, 학문의 적, 교권의 적, 정적(政敵)의 인기의 적이 있습니다. 사랑의 가난함을 안 고 사랑 없음을 애통해 하고, 사랑에 주리고 목 말라하듯 사모하고 기도해야겠습니다. 행복이란 남을 행복하게 해줄 때 얻어지는 부산물입니다. 하나님과 남을 위해 살기로 한 사 람은 자유인입니다. 주여, 내게 밀알처럼 썩는 기쁨을 주옵소서. 나룻배처럼 살게 하소서. 이 름 없이 살게 하소서.
- 김준곤 목사 (한국 대학생 선교회) -